Sunday, January 23, 2011

눈이 내리는 날, 난로 불에 끓여 먹던 라면의 행복

심동호의 행복한 기억 하나

정말 오랫만에 눈을 맞고 오래 걸었다.
언제였을까? 이렇게 눈을 맞고 걸어 본지가...

동네 시장을 찾았다.
고향집은 시골의 5일시장 자리에 위치했는데 어머님께서는 늘 세상이
나를 외면하고 힘들다고 느낄때는 시장에 가 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곳에선 정말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보면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게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씀을 해 주시곤 했었다.

날은 추운데다 머리엔 눈이 쌓여 몸도 녹일 겸 비닐 천막이 쳐진 튀김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오뎅과 튀김을 시켰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함께 장사를 하시는데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딸이 함께 있었
다. 오가는 손님들을 반가운 웃음으로 맞이하는 아주머니. 튀김을 내어
주고 조금 시간이 남는 다 싶으면 별일도 아닌 - 라디오에서 윤종신의
새 노래가 나오니 윤종신이 맞다 아니다. 저 가수는 목소리가 싫으네,
좋으네 등등... -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부부가 웃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딸 아이는 가끔 어머니 어깨도 주물러 드리고 난로
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오뎅 국물의 수증기 보다도 따뜻한 가족의 모습을
보았다.

배불리 먹고 4000원. '하루 50 명의 손님을 받는데도 20만원일텐데..
장사가 매일 같이 잘되 배로 번다고 해도 원가와 자릿세를 빼면 한달에
4-500은 벌려나? 물론 작은 돈도 아니지만 큰 돈도 아닐텐데 대학다니는
아들도 있는 것 같은데 애들은 어떻게 키웠을까? 외식은 일년에 몇 번
이나 할까? 가족여행은 가 봤을까?'
문득 나도 모르게 행복을 그들이 버는 금전의 크기와 비교하려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튀김집에서 나와 내리는 눈을 맞으며 거리를 걷노라니 문득 어릴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70년대는 다들 그랬지만 지금에 비교하면 너무나
어렵게들 살았었다. 매년 겨울이면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아
뜨거운 주전자의 물을 수도관에 부어가며 얼음을 녹여 물이 나오게 하곤
했던 기억이 선하다.

우리집은 시골에서 조그만 가게를 열어 장사를 했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초등학생이던 나는 숙제를 마치고 9시
경이면 가게에 나와 마지막 짐 정리를 하시던 아버지 어머니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고자 문 닫는 것을 돕곤 했었다. 지금이야 셔터문이
있어 더러는 주르르륵 고리로 셔터를 잡아 내리거나 버튼 하나로
자동으로 셔터문이 내려오곤 하지만 그때는 문짝 하나 하나를 문에
가져다 붙이고 거기에 두툼한 열쇠로 잠금을 해야했다. 도둑을 예방
하기 위해 그냥 나무 문짝이 아니라 두꺼운 철을 대어 붙인 제법
무게가 나가는 커다란 문짝이 가게에서 떨어진 골목 모퉁이에 세워져
있었고 그걸 일일히 들어다가 날라오곤 했었다. 그때 내가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까? 양팔을 쭈욱 펼쳐야 겨우 문이 손안에 잡히기에
한살반 차이가 나는 동생은 용을 써도 양팔로 문을 잡을 수가 없었던
크기이니 크기도 크기이지만 무게또한 만만치 않았으리라.

또 기억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때는 지금처럼 온풍기나 히터가 없었던
때라 검정색의 연탄 난로를 가게에 설치를 하고 연탄가스를 빼내기
위해 길게 양철 연통을 가게 밖으로 빼 냈는데 학교 갔다오면 언 손을
녹이기 위해 양철통에 손을 감싸쥐고 잡았다 놨다를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겨울이면 눈장난에 손은 얼고 터서 갈라져 거북이 등처럼 되어
어머니는 그 난로 위에 양철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덥힌 다음 손을
담그게 하고 물이 뜨겁다고 손을 빼내면 등짝을 때려 가면서 이태리
타올로 그 손을 박박 밀어 주신 기억도 난다. 그때는 맞은 등도 아팠고
손도 때 이태리 타올에 밀려 쓰라리고 아렸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때가
왜 그리도 그리운지...

암튼, 눈이 함박히 내리던 겨울 밤, 그렇게 문을 닫고 나면 불씨가
남아있는 그 난로 위에 아버지께서 직접 양은 냄비에 라면을 끓여
주시고 어머니와 동생과 나 이렇게 4명이서 행복하게 야식을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삼양라면이 라면 업계에선 유일하다 했는데 이 라면 값의
거의 두배가 넘는 고급 라면으로 장수면이라는 신제품이 나왔었다.
아버지께서 끓여주신 그 장수면을 양은냄비 뚜껑에 덜어 후후 불며
먹던 그 순간의 기억은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들
중 가장 행복한 기억이 아닌가 싶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초등학교 방학때 서예학원을 다닐때 첫 작품전에 냈던 글 귀.
아마 괴테의 명언록 중에서 가져왔던 것 같다
'행복은 누구의 손에 든지 닿을 만한 곳에 있다'

오늘처럼 이렇게 눈이 소복히 내리는 날엔 다시금 아버지가 끓여주시는
장수면을 가족이 모여 앉아 먹고 싶다.
그때의 그 맛과 행복을 또 한번 진하게 느끼고 싶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